[천자칼럼] 낭떠러지에서 손 놓으라는 뜻

입력 2023-12-29 18:27   수정 2023-12-30 00:18

불교의 선문답이나 화두에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적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어떤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 있다. 입은 나뭇가지를 물고 있고, 손은 가지를 잡을 수도 없으며, 발로 가지를 디딜 수도 없다. 그때 어떤 이가 나무 아래에서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답하지 않으면 질문을 외면하는 것이고, 답을 한다면 나무에서 떨어질 것이다. 어찌해야 하겠는가.” 당나라 때의 향엄 스님(?~898)이 던진 ‘향엄상수(香嚴上樹)’라는 화두다. “일러도 몽둥이 30방이요, 이르지 못해도 30방”이라고 한 덕산 스님이나, 만공 스님에게 “이걸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마디로 똑바로 일러보라”고 한 수월 스님도 마찬가지다.

진퇴양난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생각의 틀을 깨야 한다. 선문답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 추론이나 정답이 아니다. 덕산은 몽둥이에 맞느냐 안 맞느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기를 주문한다. 만공 스님은 숭늉 그릇을 문밖에 내던져 깨트림으로써 생각을 가로막는 틀 자체를 깨버렸다. 동쪽 선방과 서쪽 선방의 수행자들이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다툼을 벌이자 고양이 목을 베어버렸다는 ‘남전참묘(南泉斬猫)’의 고사도 다르지 않다. 살생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시비의 대상을 없애버린 것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며 ‘현애살수(懸崖撒手)’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고 한다. 현애살수는 깎아지른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는 뜻이다. 죽으란 얘긴가 싶지만 그게 아니다. 낭떠러지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살길이 열린다는 얘기다. 공포에 질려 아래는 보지도 못한 채 아등바등 매달려 있는 절벽이 실은 1m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선인들이 “벼랑에서 손을 놓아버릴 수 있어야 대장부” “백척 장대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고 한 이유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막기에 급급한 이 대표에게 이런 용기와 확신이 있을지 모르겠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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